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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자료의 시너지: '사회의 질' 연구의 경우

KOSSDA 엣세이


지난 2009년 9월 25일에 발행된 자료원 소식 14호에 실린 특별기고문을 소개합니다. KOSSDA 자료를 이용해서 '사회의 질' 연구를 진행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이 연구소는 KOSSDA의 첫 번째 자료공유협약기관이랍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35건의 조사자료를 비롯하여 3개 연구에 대한 질적자료, 연구보고서까지 다수의 자료를 기탁해 주고 있습니다. 기탁된 자료 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시행된 자료를 찾아보니 1964년에 실시된 '신문독자에 대한 사회조사'와 '도시인구조절에 관한 조사'네요. 자칫 소실될 우려가 있었던 옛 자료부터 아카이브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럼 KOSSDA 자료를 연구에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서울대 사회학과의 장덕진 교수님이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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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자료의 시너지: ‘사회의 질’ 연구의 경우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07년 12월, 필자가 소속하고 있는 대학의 부설연구소인 사회발전연구소(이하 ISDPR)가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중점연구소로 선정되었다. 연구제목은 “사회발전과 사회의 질(Social Quality) 연구”로서, 이 연구는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하여 시계열자료로 구축하고 이를 서구사회나 동아시아 국가들과 비교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한국 사회의 발전모델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긴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으면서 연구소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학이 주도하는 발전이론을 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규정에 따라 학과 교수 3명이 연구총책임자와 세부과제 책임자를 나누어 맡고, 공채를 거쳐 4명의 연구전임인력을 초빙했다. 타 기관에 재직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연구에 큰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공동연구원도 4분을 모셨다.

문제는 자료였다. 지금까지 사회발전이라고 하면 주로 GDP와 같은 양적 성장만을 주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사회의 질’이라는 주제에 부합할 양질의 데이터를 찾거나 생산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세계적으로도 양적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질적 발전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러 나라 학자들에 의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나, 그들도 자료의 부족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때 떠오른 생각이 사회과학 자료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기관인 한국사회과학자료원(KOSSDA)으로부터 연구에 활용할만한 자료들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사회의 질 연구는 90년대 중후반부터 유럽의 학자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고 아시아권에서도 대만, 홍콩, 일본, 태국, 호주 등의 국가들이 이미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은 분명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ISDPR의 연구역량과 KOSSDA의 자료가 합쳐지기 시작하자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기존의 연구성과들을 빠른 시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이 국제 학계의 연구자들이 모두 목말라 하고 있던 데이터를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ISDPR은 60년대부터 수행해온 다양한 연구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자료들은 더러는 잊혀지고, 더러는 릴 테이프와 같은 옛날 매체에 보관된 상태여서 이용하기가 어려웠으며, 더러는 데이터만 존재하고 코딩시트가 사라진 것도 있었다. 묵혀두면 조만간 없어지고 말 것들이었다. ISDPR은 이 자료들을 5년 전에 KOSSDA에 기탁한 바 있는데 KOSSDA는 이 40년치의 귀중한 자료들을 가져다가 일일이 복원하고, 새로 코딩하고, 없어진 설문지를 찾아내어 결합시켜 주었다. 우리는 이 자료가 학문공동체 전체에 적지않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KOSSDA에 기탁하였다. 그러나 자료기탁의 최대 수혜자는 우리들 자신이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KOSSDA가 소장하고 있는 한국종합사회조사(KGSS)를 비롯한 많은 자료들은 거시와 미시, 사회제도와 공동체, 객관적 및 주관적 지표들을 만들어 내는데 활용할 수 있어서 사회의 질 연구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우리 연구진은 KOSSDA 소장자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시아국가에 적합한 사회지표를 구성하였으며 이를 동아시아 국가와 광범위하게 비교할 수 있는 사회지표체계를 마련하였다. 2008년 초 대만국립대학에서 열린 사회의 질 국제학회에 처음 참석하였을 때 한국팀은 이제 갓 연구에 동참한 신입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8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국제학회와 대만국립대에서 열린 사회의 질 워크숍, 그리고 2009년 3월 우리가 주최한 서울 워크숍을 거치면서 우리의 연구는 급성장하였다. 사회의 질 연구를 처음 주창하고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영국 셰필드 대학의 Alan Walker 교수와 David Philips 교수는 “한국팀의 연구는 이미 유럽에서 진행되어온 연구수준을 뛰어넘었다”고 언급하였고, 대만국립대의 Lih-Rong Wang 교수는 “한국팀이 없이는 이제 사회의 질 연구는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하였다. 올해에는 한국팀의 주도로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의 질을 비교할 수 있는 “사회의 질 표준설문지”를 개발하여 한국, 대만, 홍콩, 호주, 난징, 상해, 태국, 일본 등 8개 팀이 각기 자신의 나라에서 조사를 수행하고 자료를 공유하여 그 분석결과를 12월에 태국에서 열리는 사회의 질 국제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으로 있다. 이러한 연구성과들을 인정받아 얼마전 우리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대표우수성과로 선정되었다.
 
불과 2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ISDPR과 KOSSDA가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를 돌이켜보면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탄탄한 사회과학 이론과 충실한 데이터 아카이브가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얼마나 큰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과가 크다 하더라도 앞으로 두 기관이 함께 이루어낼 가능성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자리를 빌어 KOSSDA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동료 연구자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